396 자기관찰을 위한 이름의 필요성
- 작성일자 : 9월 27th, 2022 함께 볼 말 들: 철학
자기(스스로, 나)에 대한 관찰(내관, 성찰)은 대부분 일반 사물을 관찰하는 것처럼 과학적이지 않고, 일반 사물을 설명하는 것처럼 논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자기관찰이 객관적으로 관찰되기 어렵고, 그 결과를 전달 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즉 자기관찰의 결과들이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공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조차 상황이 달라지거나, 때가 달라지면 같은 결과이어야 할 것이 매우 다르게 관찰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자기관찰의 결과를 타인에게 전달 하고자 할 때, 타인은 그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얻고서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결과를 얻고서 같은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과거엔 이런 전달에 있어서, 옳바른 전달은 전달 받은자에게 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즉 깨닳음의 내용을 경전과 같은 형식으로 전달하면, 그 경전을 전달 받은자가 그 깨닳음을 얻거나, 얻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전달 받은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 전달 방식이 바뀌어, 깨닳음의 전달은 객관성이 보장되는 논문 형식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됨으로써, 깨닳음의 전달은 전달자의 몫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전달자가 이러 이러하게 했더니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전달하면, 전달 받은자가 이러 이러 하게 했더니 전달자의 것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많은 전달자들은 경전 형식의 전달만을 고집하고 있는경우가 많은데, 특히 마음, 정신, 영혼, 영이라고 일컫는 영역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젠 모든 영역에서, 전달은 논문 형식으로 전달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글이 시작되었다.
논문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한 대상을 관찰하는 순간
대체적으로 1. 관찰된 대상, 2. 관찰된 결과, 3. 대상과 결과의 인과 관계 세 부분이 형성 되는데, 이 세부분이 서로 알 수 있는 방법, 또는 그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하여 전달 하여야 함을 말한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전달은 아니지만, 좀 더 잘 전달 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이 세부분이 과거에도 사물의 관찰에서는 비교적 잘 구분되어 설명되는 편이었으나, 자기 관찰에서는 서로 혼돈되어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된다.
즉 관찰하는 자기, 관찰된 자기, 관찰하는 자기와 관찰된 자기의 인과관계가 잘 구분되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보통 팔을 꼬집혔을 경우, 팔의 꼬집힌 그 부분이 아프다고 말한다(이러한 표현은 원인과 결과가 동일시된다).
그러나 아픈 것은 꼬집힌 부위에서의 자극으로, 또는 꼬집힌 부위에서 시작되는 신경의 손상으로, 또는 그 자극을 최종 전달 받 뇌의 손상으로 올 수도 있고, 아픈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즉 꼬집히는 순간이 있을 때(관찰 될 때), 꼬집힌 것, 꼬집힌 것이 뇌에 전달 되는 것, 뇌에서 아프다는 결과를 갖는 세 부분이 있다라는 점에서, 어디가 꼬집혔고 그것이 신경을 타고 뇌에 전달되어 아프다는 느낌을 주었다라는 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꼬집혀 아프다는 것의 전달에는, 꼬집혀 아픈 원인과 결과가 각각 설명되고, 꼬집힌 원인이 아픈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도 있다는 것이 설명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솥뚜껑을 보고 놀랐다'가 아니라 '솥뚜겅이 자라인 줄 알고 놀랐다'라고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방 접종주사를 맞았지만 아프지 않다'가 아니라 '주사를 놓으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만져주어서 주사를 맞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라고 설명 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의 관찰 결과는 관찰되는 자기에게 의존되어 오는 것 하나, 관찰하는 자기에게 의존되어 오는 것 하나, 이 둘이 연결되는 인과관계 하나, 이렇게 하나의 관찰 대상이 셋으로 나뉘어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좀 더 의도적으로 설명하려고 해야한다.
물론 실 생활에서 아느 한부분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그 생략이 필요하지만, 항상 그 생략이 있다는 것이 인식되어 있어야 된다.
이럴 수 있을 때, 항상 깨어 있다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지름길은, 뇌 구조와 기능을 알아야하고, 뇌와 뇌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과정에 개입되는 말(이름)을 아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기관찰의 공유(소통)는 이들에 개입되는 말(이름)을 서로 공유 하는 것으로시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눈을 보아야(안.이.비.설.신.의 도 마찬가지)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렵지만 그 것이 가능한 것이 사람이라고 전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