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도설에 대한 생각

작성: 작성자: care_man

성학십도의 제1장 태극도는 장차 설명될 모든 장들의 전제인 정명(正名)의 장이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는 방법과, 전체와 전체를 나눈 부분들의 이름과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정명(正名)을 공자, 맹자, 순자 성현들께서도 매우 강조하신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태극도는 전체를 말하고, 그 체를 부분으로 나누는 방식을 취하면서 그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당연히 이름 부여는 논리관계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대상으로 한다.
'있는 그대로' 전체를 먼저 태극(太極)이라 이름을 부여하면서 이는 무극(無極)이라 하였는데,
이는 '있는 그대로' 인 전체를 말(글)이 있어 "태극"이라 하고, 말이 있기 전을 '무극'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무한히 큰 것은 경험 할 수 없고, '경험 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 일반과 같다.
또한 원의 시작과 끝은 같고, 원주 상의 어느 점이든 시작 점이면서 끝 점이 된다.
마찬가지로 위로 던진 돌이 만드는 포물선의 접점은 올라오는 점과 내려가는 점이 같다 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생각해보면 태극은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인 공(空-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무한한 공간, 즉 가장 큰 공간을 '끝이 없다' 라고 한다. 그러니 '공간 자체', 즉 전체로서의 공간은 태극이며 무극이다.

이어서 태극이 움직여 양(陽)이 되고, 움직이지 않아 음(陰)이 된다 하였다.
말하자면 태극의 움직임(변화)이라는 것은 태극(공간)은 그대로이되 그 태극에 움직임(변화)이 있다는 것이다.
즉 움직임은 시간의 차이로 알 수 있으며, 이는 시간이라는 기준이 공간에 적용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즉 시공(時空)이다.
공이 어제, 오늘, 내일의 분별이 없는 것이 태극이요, 분별이 있으면 음양이라는 것이며, 이 분별에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시공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태극과 음양은 시간과 공간, '있는 그대로' 의 시공이다.
이렇듯 장차 말하고자 하는 것, 전체로서의 '있는 그대로' 인 시공에 이름(정명)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섞임을 다시 한번 더 나누어, 그 다름에 따라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름을 주었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의 전체에 대한 부분의 이름을 부여하였다.
경험 할 수 있는 예로 본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환절기이고, 동,서,남,북,중앙이다.

이점에서 '있는 그대로' 가 태극으로, 음양으로 이름을 짓는, 그렇게 보는 관점(기준)이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 궁극으로 '나')이 '있는 그대로' 에 마주하여 이름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을 지음에 있어 전체와 부분에서, 무극에서 태극을, 태극에서 음양으로, 이름을 부여 함에 있어 그 이름의 경계가 만들어 진 것이다.
'크다' 기준(경계), '다름' 의 기준(경계)이 만들어 졌으며, 기준은 바로 사람(나) 의한 것이다.
내가 있어 이 경계가 만들어지고, 그 경계에 따라 이름을 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로 인해 2진 법, 삼진 법, 혹은 10진 법, 12진 법 등과 같은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는 형식을 갖게 된 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계는 계절에서도 계절이 바뀌는 사이, 즉 환절기와, 동서남북의 중심인 중앙이라는 오행 배치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이(주관)이 개입함으로써 나를 중심으로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의 경계가 만들어지고, 사계절에 더하여 계절이 하나 더 만들어(환절기) 다섯 계절의 이름이 주어지고, 사방에 내가 있는 중앙을 더하여 다섯 방위의 이름을 부여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음양이며, 태극이고, 무극, 즉 있는 그대로에 이름을 부여했다 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태극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람 자체가 전체로서 대할 때 하나의 태극이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전체, 즉 태극으로서 사람은 정,기, 신의 부분으로, 다시 오장 육부의 부분으로 이름 짓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는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한 이 세상 만물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듯 태극도설에서 말하는 바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그리고 부분을 나누는 형식과 그 전체와 부분에 대한 이름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단지 명목(논리적으로 없는 것에 대한)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